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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점심에 이태원역 근처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둘이 만나자마자 동시에 한 말이 있다.
와! 점심에는 완전히 다른 곳이네
이태원역 근처는 주로 주말 저녁에 오다 보니 시끌벅적하고 휘황찬란한 이태원에 익숙했는데 한산하고 평화로운 점심의 이태원은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인데도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곳들 말이다. 굳이 상대성이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케팅에서 4P라는 개념이 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마케팅할 때 고려해야 하는 4가지 중요 요소를 일컫는 말로 Product(상품), Price(가격), Promotion(판촉), Place(유통)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Place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마케팅 요소다.
최근에는 4P를 고객 관점에서 해석한 4A라는 개념도 많이 쓰이고 있다.
Product(상품) = Acceptability(수용성)
Price(가격) = Affordability(지불 가능성)
Promotion(판촉) = Awareness(인지도)
Place(유통) = Accessibility(접근 가능성)
지금까지 마케팅에서 Place를 볼 때 시간 개념을 제외한 공간 개념으로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마케팅과 온라인 마케팅을 구분할 때도 그것이 행해지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지 시간에 대한 고려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이 고도화됨에 따라 시간 개념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는 영리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즉 시간 마케팅(Time Marketing)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1. 매거진 B
매거진 B는 내가 이전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었는데 ‘Brand Documentary Magazine’을 표방하는 것처럼 가치 있는 브랜드들에 대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깊이 있게 다루는 잡지이다. 이 잡지의 장점을 자세히 열거하자면 시리즈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시간’이다.
기존의 잡지들의 표지에는 몇 년 몇 월에 나왔는지가 강조되어 적혀있다. 그러다 보니 다음호 잡지가 나오게 되면 자연스레 낡고 사라지는 수순을 거치게 된다. 즉 표지에 날짜가 적히는 순간 시한부 판정을 받는 것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고서야 2022년에 2021년 잡지를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거진 B의 표지는 ‘시간’이 아닌 ‘브랜드’를 강조하고 있다. 시한부 판정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대신 컬렉션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시간을 최소화함으로써 매거진 B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잡지가 된 것이다.
2. 롱블랙
예전에는 TV나 라디오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비디오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녹화/녹음을 해서 나중에도 보고들을 수 있는 방법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해당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를 기다려서 콘텐츠를 소비하곤 했다. 즉 시간의 주도권이 매체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본인이 원하는 속도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다시 시간의 주도권이 소비자에게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다시 한번 뒤바꾸려고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롱블랙이다. 롱블랙은 ‘매일 하나의 콘텐츠, 24시간 안에 안 읽으면 사라지는 구독 서비스’를 표방하는 브랜드이다.
커피를 내리고 바로 마셔야 그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듯이 롱블랙도 본인들의 콘텐츠를 이렇게 소비하라고 시간을 활용한 일종의 넛지(Nudge: 간접적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시간의 주도권을 확보하여 고객이 자사 채널을 매일 방문하도록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고 또한 이를 통해 새로운 수익까지 창출하고 있다(24시간이 지난 콘텐츠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시간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브랜드는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롱블랙을 통해 차차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3. 온고지신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이 돈을 벌 때 생각할 수 있는 요소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지불 비용)’와 ‘회전율’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회전율’의 승패는 결국 얼마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카페들은 고객이 매장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기도 하고, 구조적으로 오래 앉아 있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고객의 만족도를 저하시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카페마다 본인들의 지향점에 맞게 이 전략은 달리 가고 있다. 다만 고객들이 주문을 하고 커피를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과 동선을 최소화하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로 고객이 주문하고 받는데 까지 걸리는 시공간을 늘리는데 집중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대입구역 근처 일명 샤로수길에 위치한 온고지신이다.
이곳은 고객이 1층에서 주문을 하고 나서 받은 영수증을 2층에 올라가서 제시하면 그때부터 음료를 만들기 시작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즉 ‘주문-> 음료 수령’을 ‘1층에서 주문-> 영수증 수령-> 2층으로 이동-> 영수증 전달-> 음료 수령’으로 만들어서 하나의 시퀀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퀀스(Sequence)
: 서로 연관된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서사, 즉 흐름이 있는 이야기
– <알쓸신잡 2> 중 –
이처럼 시공간을 늘리는 작업을 통해 단순한 주문 과정에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매료된 고객은 높은 확률로 재방문하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눌 친구와 함께.
이러한 시공간을 늘리는 행위는 앞서 말한 객단가를 높일 수 있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동일한 결과를 제공받을 때 더 긴 시간을 경험한 곳을 더 높은 비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숙련된 수리기사가 5분 만에 고치고 50만 원을 요구하는 것과 초보 수리기사가 5시간 만에 고치고 50만 원을 요구하는 것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 둘의 실력을 모른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위의 예시 말고도 선도적인 마케팅을 하는 기업들은 시간을 포함하는 4차원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간을 배제한 3차원적 마케팅만을 했다면 이제는 시간 마케팅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마케팅을 해보면 어떨까?
p.s. 서두에 말한 시간의 변화에 따른 공간의 변화는 아래 영상처럼 옥외광고(OOH: Ouf Of Home)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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